카테고리 없음

담쟁이 덩굴과 용봉탕

모란이피는정원 2021. 10. 9. 15:41

여자는 익숙한 솜씨로
펄펄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화들짝 열어제치고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가위를 들어
거무튀튀한 토종닭 날갯 죽지를 싹둑 잘라
손님 접시에 올려 놓으며 말한다
어서 식기 전에 드시라
여름 보양식으로 이것 보다 더 좋은 게 없지 않냐
쉬지 않고 끓고 있는 뜨물 같은 국물 속에
뽀얗게 부푼 잉어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은 자라 한 마리
엎어져서 꿈을 꾸는 듯
돌아누워 울음을 우는 듯
곧 저 슬픈 뒤통수도 모가지도
닳고 닳았지만 감각은여전한 음식점 집게에 찍혀 눌리우고
늙을수록 선뜩해시는 가윗날에
으깨지고 도막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이 약주 한 잔 하시라 또 권하니
억센 듯 부드러운 여자의 손놀림 찌든 듯 해탈한 듯
저 웃음이 상술이지 상술이야 하면서도 그 상술에
낼름 한 잔을 털어넣고는
자네도 한 잔 받으소 권커니 잣거니 잔이 돌아가고
자라 쓸개주라고 잔 속엔 쓸개 보다 더 쓰고 애잔한
자라 한 마리 푸르스름한 연기 뿜으며 둥둥 떠다니는데
몇 십 년 음식점과 역사를 같이한 늙어 빠진 담쟁이덩굴도
그 쓸개주 맛 좀 보고 싶어서
야심한 밤이면 담장 아래로 갈퀴 같은 발을 촉수처럼 뻗어서
한잔씩 두잔씩 쪽쪽 들이키다가
그런 세월 끝에 식물도 무엇도 아닌 담쟁이가 되었다지
하릴없이 빗방울 드는 적적한 날이면 시멘트 벽돌을 안주 삼아
쓸개주를 핥다보니 고래 힘줄 보다 더 질겨진 뿌리
모질게 끌어안은 벽돌 벽을 수백 바퀴를 돌고 돌아도
영원히 죽지 않는 괴식물이 되었다지
이제는 늙어 백발된 여자 어느 한 낮 숨거둔채
꽃상여에 얹혀 저승 나들이 가버리고
배롱 나무 그늘에서 근 백여년을 옴팍 졸던 집터마져
여자 따라 갔지만
담쟁이 만은 죽고싶어도 죽을 수가 없어
그 후로도 몇백년
저수지 음식점 그 집터를 흔적도 없이 뒤덮은 무성한 담쟁이

                                                      


***************************************************************************************************************************

여기에 실린 글과 사진은 모란피는정원의 저작권이 있는 글과 그림입니다. 허락없이 퍼나르거나 글의 일부를 자신의 글인냥 활용하면 저작권법에 걸릴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